점점 강해진 사람 — 역대하 27장 2026년 9월 11일 (금) 헤븐인교회 새벽예배 더원메시지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눕니다.
점점 강해진 사람
1 요담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여루사는 사독의 딸이다.
2 그는 아버지 웃시야가 한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주님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은 계속하여 악한 일을 저질렀다.
3 그는 주님의 성전의 ‘북쪽 문’을 만들어 세웠고, 오벨 성벽도 더 연장하여 쌓았다.
4 유다의 산간지방에는 성읍들을 건축하고, 산림지역에는 요새를 만들고 망대를 세웠다.
5 더욱이 그는 암몬 자손의 왕들과 싸워서 이겼다. 그 해에 암몬 자손은 은 백 달란트와, 밀 만 석과 보리 만 석을 조공으로 바쳤고, 그 다음 해에도, 또 삼 년째 되는 해에도, 암몬 자손은 같은 양으로 조공을 바쳤다.
6 요담은, 주 그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으므로 점점 강해졌다.
7 요담이 다스리던 기간에 생긴 다른 사건들, 그가 전쟁에 나가 싸운 것과 그의 행적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8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
9 요담이 죽어서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다윗 성’에 장사하였다. 그의 아들 아하스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웃시야도 강해졌고 요담도 강해졌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에게 똑같은 단어를 씁니다. 강해지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차이는 순서였습니다. 아버지는 힘이 세어지면서 교만해져 무너졌고, 아들은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으므로 점점 강해졌습니다.
요담에게는 극적인 사건이 없습니다. 다만 어제 서 있던 자리에 오늘도 서 있었을 뿐입니다.
“요담은, 주 그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으므로 점점 강해졌다.”
📖 오늘의 본문 — 역대하 27:1-9 (새번역)
❓ 오늘의 세 가지 질문
빼고 더한 이야기
가족 단톡방에 여행 사진이 올라옵니다. 같은 날, 같은 곳에 다녀왔는데 올리는 사진이 다 다릅니다. 아버지는 풍경 사진, 어머니는 밥상 사진, 아이는 온통 자기 얼굴 사진. 누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남기고 싶으냐가 달랐던 것뿐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같은 시대를 다루는데 고른 장면이 다릅니다. 열왕기는 나라가 무너진 것을 두 눈으로 본 사람들에게 주어진 책이라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답합니다. 역대기는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주어진 책입니다. 성전은 다시 섰지만 초라했고, 나라는 남의 나라 밑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벌 받는 중입니까?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습니까?”
뺀 것 하나 · 열왕기는 요담 때에도 산당을 헐지 않아 백성이 거기서 제사를 드렸다고 적습니다(왕하 15:35). 역대기는 그 문장을 지우고 이렇게 씁니다. “그러나 백성은 계속하여 악한 일을 저질렀다.”
뺀 것 둘 · 열왕기는 요담 때부터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유다를 치기 시작했다고 적습니다(왕하 15:37). 역대기는 그 대목을 통째로 들어내 다음 왕 아하스의 이야기로 옮겨 놓습니다(대하 28:5-8).
더한 것 · 성전 북쪽 문, 오벨 성벽, 산간지방의 성읍과 산림지역의 요새·망대, 암몬과의 승리 — 그리고 6절 한 문장.
아버지의 실패가 아들의 운명은 아닙니다
요담의 아버지는 웃시야입니다. 오십이 년을 다스린 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사장만 할 수 있는 분향을 하겠다고 성전에 들어갔다가 이마에 나병이 생겼고, 죽는 날까지 별궁에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죽어서도 왕실 묘지가 아니라 변두리 땅에 묻혔습니다(대하 26:23).
아들은 그 모든 것을 옆에서 봤습니다. 아버지가 격리된 동안 나라를 대신 다스린 사람이 바로 요담이었으니까요. 그리고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아버지 웃시야가 한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주님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역대기는 요담 다음에 악한 아하스를 놓고, 그다음에 신실한 히스기야를 놓습니다. 신실한 아버지, 악한 아들, 신실한 손자. 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아무도 자기가 자란 환경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웃시야도 강해졌고, 요담도 강해졌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에게 같은 단어를 씁니다. 그러니 강해지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웃시야: 힘이 세어지면서 → 교만해져 → 무너짐
요담: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으므로 → 점점 강해짐
한 사람은 강해진 다음에 길을 잃었고, 한 사람은 길을 붙든 채로 강해졌습니다.
6절의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다”는 표현은 원래 “그가 자기 길을 굳게 세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건물 기초를 놓듯이, 흔들리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는 말입니다. 화려한 말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다만 2절 끝에 가시 하나가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계속하여 악한 일을 저질렀다.”
왕은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책임을 요담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백성의 몫으로 그대로 남겨 둡니다.
오늘 우리의 평안은 누구의 무릎에 빚지고 있습니까? 그 무릎이 사라져도 남아 있을 내 믿음이 있습니까?
다윗 성에 묻힌 아들
아버지는 나병 때문에 왕실 묘지 바깥 변두리 땅에 묻혔는데, 아들은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여호사밧 이후 처음으로 왕실 묘지에 안장된 왕입니다. 참 오래간만에 나오는 조용한 문장입니다.
✝️ 복음으로 건너가기
웃시야처럼 내 힘으로 밀고 들어가려 할 때 우리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초대받아 들어갑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겠다”(대하 7:14).
🌱 오늘의 적용
- 본받을 것과 밟지 않을 것을 구분하기 — 내가 물려받은 것 가운데 이어갈 것 하나, 여기서 끊을 것 하나를 오늘 적어 봅니다.
- 길을 먼저, 힘은 나중에 — 오늘 잘되는 일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무릎을 꿇습니다. 강해질수록 더 낮아지는 연습입니다.
- 빌려 쓰는 믿음에서 내 믿음으로 — 목사님의 기도, 부모님의 기도에 얹혀 있지 않은, 오늘 나 혼자 드리는 기도 한 가지를 정합니다.
🙏 마무리 권면
오늘 새벽, 우리 각자의 길을 다시 굳게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점점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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