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 두신 등불 — 역대하 22장 2026년 9월 2일 (수) 헤븐인교회 새벽예배 더원메시지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눕니다.
숨겨 두신 등불
1 예루살렘 사람들이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하였다.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쳐들어 왔던 침략군들에게 아하시야의 형들이 다 학살당하였으므로,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다. 2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두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한 해밖에 다스리지 못하였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이다. 3 아하시야 역시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4 그는 아합 가문을 따라 주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다스리다가, 그만 망하고 말았다. 5 그는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 요람 왕과 함께 시리아의 하사엘 왕을 맞아 싸우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올라갔다. 그 싸움에서 시리아 군인이 요람을 쳐서 부상을 입혔다. 6 요람은, 시리아의 하사엘 왕과 라마에서 싸울 때에 입은 부상을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갔다. 그 때에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들었으므로, 유다의 여호람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문병을 하려고 이스르엘로 내려갔다. 7 아하시야는 요람에게 문병을 갔다가 오히려 해를 입게 되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일을 그렇게 꾸미셨기 때문이다. 아하시야가 병문안을 하러 갔다가, 뜻밖에도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예후는 이미 주님께서 아합 왕가를 멸망시키시려고 기름 부어 뽑아 세운 사람이었다. 8 예후는 아합 왕가를 징벌하면서, 유다 군대의 지휘관들과, 아하시야를 섬기는 조카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다. 9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가서 숨어 있었으나, 예후가 그를 찾아 나섰다. 마침 예후의 부하들이 아하시야를 붙잡아 예후에게로 데리고 왔다. 예후가 그를 죽이니, 사람들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 찾은 여호사밧의 아들이었다” 하면서, 그를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나니, 아하시야의 가문에는 왕국을 지켜 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유다 집의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11 그러나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서도, 왕의 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서, 아달랴에게서 화를 면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요아스는 죽이지 못하였다. 여호세바는 여호람 왕의 딸이요,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이다. 아하시야에게는 누이가 되는 사람이다. 12 요아스는 그들과 함께 여섯 해 동안을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 그 동안에,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다.(역대하 22장, 새번역)

아달랴가 왕궁과 군대를 손에 쥐고 나라를 다스리던 그때, 걸어서 몇 분 거리 성전 안에는 다윗 왕조의 진짜 왕이 숨어 있었습니다.
가장 캄캄한 이야기 밑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 대표 구절
“요아스는 그들과 함께 여섯 해 동안을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 그 동안에,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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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 가지 질문
왕관은 썼지만, 결정한 적은 없었다 (22:3-5)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라는 표현이 3절, 4절, 5절에 걸쳐 세 번 반복됩니다. 열왕기하 8장은 아하시야가 악을 행한 이유를 “아합 집안과 사돈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혼인 관계로 설명하지만, 역대기 저자는 그 설명을 지우고 대신 “어머니가 꾀었고,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랐다”를 거듭 강조합니다. 이 사람은 한 번도 자기가 결정한 적이 없었습니다. 왕관을 쓰긴 썼지만, 실제로 나라를 움직인 것은 그의 곁에서 매일 말을 넣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무엇을 듣고 하루를 시작하는지가, 결국 우리가 어디로 갈지를 정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배경은 말할 수 있어도, 책임은 옮길 수 없다 (22:3-4)
3절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꾀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악해진 것이 어머니 탓, 주변 사람들 탓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3절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다음, 4절은 주어를 바꿔 “그는 주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명백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배경을 인정하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를 꾀었다”는 사실이지만, 악을 행한 주어는 여전히 “그”입니다.
본문을 여는 열쇠 — “하나님께서 일을 그렇게 꾸미셨다” (22:7)
열왕기하는 예후의 혁명을 두 장에 걸쳐 아주 길게 이야기합니다. 기름부음, 이세벨의 죽음, 아합의 아들 70명의 죽음까지.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그 긴 이야기를 세 줄로 줄여버리고, 대신 열왕기에 없는 한 문장을 삽입합니다 — 바로 7절입니다. 겉으로 보면 22장은 죽이고 죽고 또 죽는, 혈육의 피가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 밑에 누가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도, 아합 가문의 시대를 끝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캄캄한 절망일 때, 광야를 걸을 때, 내 힘으로 안 된다고 느껴진 그때에도.
폭력으로 붙잡은 것은 폭력 앞에서 무너진다 (22:9-10)
여호람은 스스로 세력을 굳히려고 형제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런데 두 세대 만에 그 집에는 왕국을 지킬 힘 자체가 남지 않았습니다. 두 세대 안에 다윗의 집에서 집단 살육이 네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여호람이 형제들을 죽였고, 침략군이 아하시야의 형들을 죽였고, 예후가 아하시야의 조카들을 죽였고, 이제 아달랴가 남은 왕족을 죽입니다. 완전히 불이 다 꺼지는 상황입니다.
두려움으로 쌓아 올린 안전은, 안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등불을 끄신 것이 아니라 숨겨 두셨다 (22:11-12)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 여호세바가 한 살배기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성전에 숨깁니다. 역대기 저자는 여기서도 열왕기에 없는 정보를 더합니다 — 그녀가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라는 사실입니다. 대제사장의 아내였기에 그녀는 왕궁과 성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고, 그래서 아기를 성전에 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그녀의 아들이 아니라 조카입니다. 그녀는 자기 자식을 살린 것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젖먹이 하나와, 그 아기를 안고 성전으로 들어간 한 여인 — 하나님의 약속이 이 두 사람에게 걸려 있었습니다.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다.” 왕궁도, 군대도, 권력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녀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는 하나님의 집 안에 진짜 왕이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등불을 끄신 것이 아니라, 숨겨 두신 것이었습니다.
✝️ 복음 연결 — 어둠이 삼킨 것 같을 때 오신 빛
그 언약의 최종 성취가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이 캄캄하고 어둠이 모든 것을 장악한 것 같을 때, 예수님께서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한복음 1:5).
우리 눈에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주님은 그 등불을 지키고 계십니다.
🌱 오늘의 적용
- 아침의 첫 소리 점검하기 — 하루의 첫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세상의 조언보다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새벽으로 시작해 봅니다.
- 책임 떠넘기지 않기 — “환경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라고 말하고 싶은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선 주어가 나 자신임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 숨겨진 등불 신뢰하기 — 지금 아무 응답도,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등불을 끄신 것이 아니라 숨겨 두셨음을 믿고 기다립니다.
🙏 마무리 권면
캄캄한 절망의 때에도 하나님은 소망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때가 될 때 그 등불을 다시 밝혀 주십니다.
오늘도 주님을 신뢰하며, 주와 함께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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