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장 –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 핵심 메시지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두 왕국의 이야기, 각각 걸어가고 있는 두 가지의 길이 있고,

그러나 밝혀지고 있는 하나의 등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르호보암의 길, 여로보암의 길, 다윗의 길…

우리는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남유다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일으키는 왕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끄지 않는 등불이 있었습니다.

결국 다윗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향합니다.

우리는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르호보암의 길입니까? 여로보암의 길입니까? 아니면 다윗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결국 이 다윗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향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늘 신실하게 주님을 서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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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 가지 질문

  1. 아비야가 실패했음에도 예루살렘에 등불이 남아있는 이유는?
  1. 아사왕이 할머니를 폐위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1. 북 이스라엘 왕들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1️⃣ 역사의 소용돌이: 전쟁과 영적 타락

📜솔로몬과 여로보암, 르호보암의 이야기가 지나간 이후

역사는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5장은 전쟁과 왕위 계승들이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
  • 영적인 타락
  • 정치적 불안정
  • 전쟁이 그치지 않는 모습
📜[열왕기상 15: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 사이에 늘 전쟁이 있었다.”

[열왕기상 15:16]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전쟁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동족상잔의 비극은 참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형제 국가 간의 소모적이고 결론이 없는 전쟁…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안타까운 역사들이 이어져 갑니다.


2️⃣ 남유다: 아비야와 아사

아비야 – 르호보암의 죄를 답습하다

📜[열왕기상 15:3]

“아비야는 그의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그대로 따라갔으며,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달라서 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였다.”

🔍흥미로운 사실:

아비야(아비암)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닙니까?

바로 여로보암의 아들 이름도 아비야였습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아들 이름이 똑같습니다.

도대체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나

남유다의 르호보암이나 다른 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마치 이 아비야가 여로보암의 아들인지

르호보암의 아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죄 가운데 있었다는 것…

하나님의 길,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그 아버지 르호보암의 죄를 이어가는 모습을 바라봤을 때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차이점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등불

📜[열왕기상 15: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생각하셔서

예루살렘에 한 등불을 두셨다.”

아비야의 공로가 아니라

다윗을 생각하셔서 베푸셨던 은혜였으며,

이 이야기의 그 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져 가는 것을 기억하게 될 때

왜 이록 하나님께서 이 등불을 끊지 않으시고

신실하셨는지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사 – 다윗의 길을 걷다

📜[열왕기상 15:11]

“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하였다.”

아사는 41년 동안 다윗의 길을 걸었습니다:
  • 성전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음행하는 것들을 몰아내었고
  • 조상들이 만들었던 우상을 파괴했습니다
  • 물론 산당을 다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 그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습니다

할머니를 폐위시킨 아사

📜[열왕기상 15:13]

“아사는 자기 할머니를 왕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할머니가 만든 험스러운 상을 토막내어

기드론 시내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할머니를 폐위시킬 만큼

태후 마아가를 폐위시킬 만큼

이 아사왕은 말씀 앞에 온전히 서려고 애를 썼고

우상을 심판하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을 결코 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사의 실수: 인간적인 수단을 의지하다

⚠️바아사와 아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바아사는 라마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북쪽 8km 지점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예루살렘의 아사 왕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경제적 봉쇄이며 군사적 압박이었습니다.

⚠️이때 아사는 큰 실수를 범합니다: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에 남아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모아서

시리아의 벤하닷에게 주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보다 외교적 술수를 의지했던

불신앙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싫어하시는 것: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것입니다.

점쟁이의 점이 맞고 틀린 것, 용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신뢰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돈, 우리들의 건강을

주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다면

그조차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아사의 말년

⚠️아사는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늑음에 발에 병이 들었습니다.

개혁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발에 병이 든 것처럼

그의 끝에는 인간적인 수단으로 기울어진 왕의

그 쓸쓸한 마지막 시간들, 말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의 길

나답 – 아버지의 악한 길

📜[열왕기상 15:26]

“나답은 그의 부친이 걷던 악한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잘못을 그대로 따랐다.”

⚠️나답은 2년 동안의 통치 기간이 있었지만

그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고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도, 나답도

모든 백성이 죄를 짓게 만든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북국의 왕들을 평가하는

치명적인 기준이 되는 말이 계속 등장합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


여로보암 가문의 멸절

📜[열왕기상 15:29-30]

“바아사는 숨쉬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전멸시켰다.

주님께서 아히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로보암이 지은 죄 때문이었다.”

⚠️마치 예언이 성취되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물가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의 왕국은 쿠데타에 의해서 매번 무너지게 되고

이렇게 엉망인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아사는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고,

이후로도 북 이스라엘은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늘 이런 쿠데타에 의해서 왕조가 몫락하고 다시 세워지는 모습들이 반복됩니다.

결국 여로보암의 가문은 멸절되게 됩니다.


4️⃣ 두 왕국의 차이

💡북 이스라엘도 가능성이 없었을까요?

그게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왕조가 이록 위태로웠던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고

여로보암의 길을 늘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북 이스라엘이든 남유다든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머무르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오늘의 적용: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은혜를 우리가 또한 기억하고

주님 앞에 온전히 신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사도 개혁을 했습니다
  • 그러나 인간적인 수단을 의지하고 육체의 질병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행하신 참되신 왕이시며

북 이스라엘의 끊어지지 않은 모든 죄악의 길과 같은 우리의 죄악과 저주를

온전히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영원히 껐지지 않는 등불, 그 언약이 우리에게 되어 주신 줄 믿습니다.


세 가지 길

우리는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 르호보암의 길입니까?
  • 여로보았의 길입니까?
  • 아니면 다윗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결국 이 다윗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향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늘 신실하게 주님을 서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권면

우리는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르호보암의 길입니까? 여로보암의 길입니까?

아니면 다윗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결국 이 다윗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향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늘 신실하게 주님을 서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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